
카리타스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8월 16일자로 부산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으로 부임한 김무종 프란치스코입니다. 앞으로 현장에서 제가 만나게 될 장애인, 어르신들, 후원자들, 봉사자들, 사회복지사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을 주님께서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저는 사회복지나 사회사목에 대한 경험이 일천합니다. 그저 신학교 저학년 시절 두 달 동안 울산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더욱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향해 저의 시선을 두게 하시려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그분들에게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와 사회사목에 대해 배워가고 또 현장에서 부딪히고 또 여러 만남을 가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고자 합니다. 사회사목국에 오기 전 저는 지난 6년간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살다가 돌아왔습니다. 멕시코 가운데에서도 저는 가장 작고 가난한 교구 중에 하나인 캄페체 교구에서 선교사로 살았습니다.
그곳에는 정말 가난한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갔던 본당이 있는 마을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집들은 보통 우리가 흔히 삼공 블록이라고 부르는, 구멍이 세 개 뚫린 블록으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겨울이 춥지 않아서 단열재는 전혀 없었고, 그래서 낮에 작렬하는 태양으로 집은 금방 찜통으로 변했고 밤까지 열기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블록으로 지은 집들이었고 지붕도 잘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게 된 성당이 있던 마을에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나무 판자로 벽을 만들어서 지은 지은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붕은 나무를 덧대서 만들었고 바깥 마무리는 슬레이트로 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슬레이트 지붕이 울리는 소리가 어마어마했고, 방음이라는 것이 전혀 되지 않아서 밤 늦게나 새벽녘에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에 잠에서 깨는 날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주거뿐 아니라 교육이나 의료 분야도 많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시골 학교의 교육은 열악해 보였고, 그마저도 선생님들이 시골에 사는 것이 아니라 멀리 있는 도시에 살면서 주중에 잠시 시골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틈만 나면 임시방학이나 휴일로 수업일수가 적어 보였습니다. 또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 무료 공립 병원이 있지만 제대로 된 진단이나 치료가 힘들어 보였고, 사립병원에 가기에서는 비용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서, 보통 병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말하며 집으로 돌려보내면, 집에서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는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체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도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사회사목국에 있으면서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분들과 연대하며 힘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도 더욱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을 향해 저의 시선을 두게 하시려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