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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EBS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외국 방송인 ‘타일러 라쉬’의 인터뷰 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언어 천재라고 불리는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언어는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는 것입니다. (…) 언어가 몸에 배는 것이 바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려면 몸에 배도록 해야 해요. (…) 실수하더라도 배움을 계속 활용해야 언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계속해서 제 머릿속에 맴도는 이유는, 아마도 이 표현이 언어를 배우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한 아기가 잘 걷기 위해서는 스스로 걸음마를 떼야 합니다. 넘어져서 울더라도 계속 걸음마를 떼며 연습할 때,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잘 걷게 됩니다. 운동선수도 어떠한 자세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습득하기 위해서 수백 시간, 수천 시간을 들여 준비합니다. 엄청난 실패와 끊임없는 교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몸에 밴 듯이 자연스럽게 자세를 유지합니다.

우리가 실천하고 살아가려는 카리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에 대해 잘 알고 수많은 이야기를 듣더라도, 우리 몸에 사랑이 배도록 끊임없이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기가 잘 걷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또 운동선수가 올바른 자세를 터득하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사랑으로 살아가려는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알려주는 스승님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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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우리에게는 사랑이 몸에 배도록 도와줄 훌륭한 스승님이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멍에는 한 쌍의 소가 함께 짐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하는 나무 들보인데, 예수님께서는 이 멍에를 함께 메자고 초대하십니다. 우리가 당신과 같은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당신과 같은 마음으로 움직이면서 당신의 사랑을 배우길 바라십니다.

진정한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 곁에 머무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몸에 배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일반적으로 학습한 사랑과는 다릅니다. 대개 우리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누군가에게 받은 사랑만큼 사랑을 돌려주고자 합니다. 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먼저 사랑을 전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을 표현하여, 상대방이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처럼 몸에 밴 사랑은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고 언제나 상대방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뿐만 아니라 몸에 밴 것은 외적으로도 표가 납니다. 운동선수가 오랜 시간 동안 땀을 흘려 습득한 자세를 취할 때 뭔가 다르다고 느끼는 것처럼, 사랑을 습득한 사람도 특별한 느낌을 냅니다. 바로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가 뿜어져 나옵니다.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을 때(콜로 3,14 참조) 퍼지는 이 향기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은은하지만 확실하게 뿜어져 나오기를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또 사랑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