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_ 로사리오 카리타스 부국장 유연창 베드로 신부
신학교 2학년 때 가을이었습니다. 외출 날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데 ‘천주교 부산교구 사회사목국’이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오르막 경사가 심상치 않아 보였지만, 도전 정신이 불타올라서 자전거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2/3쯤 올라가니 자전거 체인이 끊어졌고, ‘이곳은 나랑 인연이 없는 곳이구나’ 하면서 자전거 가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서 사회사목국에서 부국장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렇게 사람의 생각을 넘어섭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성소(聖召)는 성직자, 수도자만 떠올리기 쉽지만 다른 부르심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평신도 사도직,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어 나가는 복음화의 일꾼으로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구원 사업을 위한 도구로 부르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본당 공동체 안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복지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직무입니다.


맹자(孟子)는 사람의 본성 가운데 하나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듭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본성을 넘어서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핍박받는 상황이 커집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와 약한 이를 보호하는 것을 믿는 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규정으로 선포하십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 어느 성에서 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희 손을 활짝 펴서,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 (신명 15,7-8) “너희는 이방인과 고아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되고, 과부의 옷을 담보로 잡아서도 안 된다. 너희는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던 것을 기억해야한다. 그 때문에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신명 24,17.22)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을 보호하라는 구약의 율법을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이야기하시며 우리의 구원과 연결해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4.37-40)
자선과 약자 보호, 사회복지를 위한 부르심에 응답한 신앙인은 셀 수없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부르심을 받은 이가 많은 것처럼,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과 약한 이들을 보호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돕는 것입니다.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신 성모님처럼 사회복지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우리 삶의 자리를 하느님 나라로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